터치 (Touch, タッチ)

믿을 수 없다. 내 두 눈을 믿을 수 없다. 정말 이게 이누도 잇신 감독의 연출작이란 말인가? 정말이지 원작에 대한 크나큰 실례라고 생각한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버렸다. 원작 터치 만화의 수많은 인물들의 갈등이나 인간관계-심지어 가족들 사이의 갈등 구조-는 그렇다 쳐도 마치 미나미가 쓰러져버린 비오는날 땅바닥에 생각없이 흘러만 가는 이야기의 흐름은 어찌된 것인가? 차라리 원작을 새롭게 재해석해서 아예 색다른 버전으로 내어놓았으면 어떠라 하는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단순히 미나미의 웃는 모습이나 잘생긴 쌍둥이를 보려는게 목적이라면 이 영화는 성공이다. 하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등 기존 작품에서 주인공들의 내면 세계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끌며 말없이 보여주고 감동을 안겨주던 연출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고 타츠야와 미나미, 두 사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버거워 숨이 차는걸 보면 안쓰러울 뿐이다. 20권이 넘는 원작을 두시간짜리 영화로 만들겠다면 과감하게 뺄건 빼야하는데 원작의 이야기를 다 품고 하려는 욕심과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어느 정도 넣어야겠다는 심보로 원작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언급해주면서 원작엔 없던 복싱부 매니저까지도 만들어 놓았다.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채 우에스기 타츠야만 빼놓고 모든 등장인물들을 사장(死藏)시켜버렸다. 미나미는 분명 원작에서 우에스기 형제들을 이끌어가는 존재와 같았는데 대놓고 연약한 여자로 만들어버렸으며, 라이벌 닛타 아키오는 지고도 웃는 바보같은 라이벌일뿐, 단 한마디 대사로 카즈야와의 갈등을 표출하는건 어리석었다. 모든 인물을 다 재구성해서 원작에서 가장 중요했던 타츠야와 미나미, 카즈야, 닛타. 이렇게 네명으로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이 훨씬 나아보이는 듯 하다. 각색과 각본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영화.

http://tv.co.kr/movie/review/movieReview.html?movie_idx=6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