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넷 리 (Jeanette Lee)
쟈넷리를 처음 본게 대학교 들어와서였다. 또래보다 비교적 늦게(?) 당구를 배운 나는 지금도 가끔씩 당구를 치면 포켓만 친다. 남자가 무슨 포켓이냐고 아무리 뭐라 해도 나는 포켓만 친다. 그건 내가 아직도 쟈넷리를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쟈넷리를 처음 봤을때, 분명 나인볼 대회였다. 백인 선수의 미스에 이어 검은 옷을 입은, 체구는 작지만 늘씬한 동양 여자가 큐대를 집어들었다. 상대 선수도 마음을 놓고 있는 완벽한 세이프티에서 승부를 거는 듯한 표정. 그리고 침묵과 함께 그녀는 작은 큐를 집어들고선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큐가 움직였을때 분명 그 큐볼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포켓인.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점프샷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위닝샷. 나인볼을 노리는 그녀의 자세는 완벽한 ‘ㄱ’자였다. 남자들의 당구에서는 볼 수 없는 힘과 정교함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당구를 구사하고 있는 여자였다.
세계를 먹어치운 검은 독거미-제미교포 2세 여성포켓볼선수
178센티 미터의 늘씬한 키, 등뒤로 길게 늘어뜨린 칠흑같은 머리카락, 앞가슴이 깊게 팬 검은 드레스와 검은 장갑. 뚜렷한 눈고리선, 눈에 서린 독기.”검은 독거미””흑거미”(black widow)라는 닉네임이 그렇게 잘 어울릴수없는 차가운 아름다움이 짙게 배어있다 . 122게임 연속 퍼펙트를 기록하기도 한 포켓볼의 마술사, 한국이름 이진희.
1971년 7월9일 뉴욕 브루크린 출생 . 15세때 처음 “풀 테이불(포켓볼)을 봤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미국 동부의 몀문 브롱스 과학고교에 다니고 있던 모범생에겐 동떨어진 세계였다. 그러나 폴뉴먼과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칼라 오브 머니”의 히트로 미 전역이 당구 열기로 몸살을 앓을때인 18세의 한여름 해질녁. 뉴욕 맨하튼의 한 컴퓨터 회사에서 프리타임으로 일하던 그녀는 직장 동료와 우연히 찾은 당구장에서 온몸을 싸고도는 진한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 들어서는순간 당구대를 오가는 늙수그래한 백인의 행동에 넋을 빼앗겼어요. 당구에 몰두하고 있는 그 모습, 말로 표현 못할 경건함.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자신감과 강한 힘. 큐를 들고 테이블에 엎드렸다가 테이블가를 돌아 다시 몸을 구부려 팔을 뻗고 정확하게 손가락을 모으는 모습이 경외심을 갖게 만들었어요”
딴 세계에 온 듯한 기분. 운명적 만남이었다. 그날부터 그녀는 그때까지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들과 과감한 이별을 하며 포켓볼에 몰입햇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당구대에 매여 사는 딸 대문에 부모는 전전긍긍했다. 동양계 갱이 난무하는 뉴욕에서 새벽2~3시에야 귀가하는 딸. 노심초사하던 부모는 딸에게 중단한 학업을 계속하도록 했다. 갈등의 세월-부모의 원대로 대학을 4군데나 옮겼지만 그녀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고 , 그 때문에 어디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결론은 하나뿐, 큐. 이후 편한 마음으로 연습에 힘을 쏟았다. 37시간 연속 플레이를 하고 쓰러져 1주일간 앓아눕기도 햇다. 자넷리는 “당구를 먹고 마시며 호흡했다”는 말로 당시를 표현했다.
93년 1월 프로당구에 입문했다. 정상의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능성을 재지않고 맹진군했다. 강한 승부 근성과 미련스러운 고집, 그리고 노력. 정확한 샷을 위해 손가락으로 견고한 브리지를 만들고 테이프로 고정한채 잠을 자기도 했다. 많은 관련 서적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통해 마인드 컨트롤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정상급 남자 포켓볼 선수 보비 헌터에게 실전지도를, 스리쿠션 부문 세계1위 이상천씨에겐 강약을 조절해 공을 치는 법과 공의 운동 방향을 비롯해 각도로 조절하는 공 공략법 등을 배웠다.
뜨거운 열정과 뛰어난 재능. 자넷 리는입문 1년도 채 안돼 출전한 여성프로당구협회 순회경기에서 10위권안에 들었다. 랭킹8위로 시작한 94년. 볼티모어 빌리아드 클래식 우승으로 흑거미의 전성시대가 열릴 것임을 예고했다. 이어 벌어진 카슨 트윈시리즈클래식, BCA, 샌프란시스코클래식, US오픈 9볼 챔피언쉽, WPBA 9볼 챔피언쉽. 안정된 브리지와 재로 잰듯한 정확한 샷으로 거목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거침없는 우승길을 달렸다. 불과 2년. 그녀는 세계포켓볼 1인자가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조지 브리드러브-프로 당구선수이다.
13세 때 척추가 휘는 증세를 보여 고통받았던 그녀는 1999년 12월에는 목뼈 탈골로 네 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반년간의 공백 끝에 2000년 6월말 여자프로당구협회(WPBA) 순회대회인 캘리포니아 클래식에서 5위를 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