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3 (Spider-Man 3, 2007)
‘세계 최초 개봉’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우리나라에서 상영이 시작된 스파이더맨3. 개봉전부터 ‘베놈’과 ‘샌드맨’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로, 화려한 액션이 가미된 예고편으로 줄곧 전작과 비슷한 내용과 흥미를 줄 것임을 공공연히 암시하였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전작들과 너무 다르다. 너무 달라서 전편의 감독과 다른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후로 스포일러 있음]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갈등 구조는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이다.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지극히 개인적인 능력을 개인적인 이유로 자신의 주변을 돕기 위해 사용한다. 그리고 그를 막는 악당들은 모두 스파이더맨이기 이전에 피터 파커인 자신과 관련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슈퍼맨처럼 세계 평화를 외치지 않는 소박한 영웅의 이야기다. 그의 능력은 결코 소박하지 않음에도. 중요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필수불가결한 점은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점점 더 거대하고 힘든 악당의 존재를 만나야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스파이더맨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책임지게 되며 이야기는 이제 도시 수호에서 벗어나 성조기 밑에서 달리는 경찰국가의 충실한 수호자 스파이더맨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황당한 것은 그렇게 스케일이 커지고 더욱 대단한 존재의 악당들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이야기틀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게다가 정체되어 있는 것은 이야기의 구조 뿐만 아니라 스파이더맨의 능력까지 포함한다. 막강해진 악당들 앞에서 그전까지 인간의 한계를 끌어내보이며 악당들과 맞서 싸웠던 스파이더맨은 사라지고 자신을 해치려던 친구와의 우정에 손을 내민다.
우정은 분명 대단한 강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정의 플롯은 결말을 끌어내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을 망각한 작가들은 해리의 얼굴에 화상을 입히기 까지 했던 스파이더맨을 집사의 말 한마디로 모든 갈등 상황을 해결해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정을 들고 나온다. 그리고 그 우정에 응답한 해리는 ‘이전의 악행으로 인한 업보로서 죽음에 이른다’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결말을 맞이한다.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허점만 가득한게 아니다. 엄청난 능력과 힘을 가진 샌드맨과 베놈은 그들이 스파이더맨을 괴롭혔던 것보다도 훨씬 쉽게 결말을 맞이한다. 태생적으로 인간적 약점을 가지고 있던 샌드맨은 당연히 모두가 예상하거나 믿고 싶지 않은 결말인 대화로서 모든 것을 종결한다. 대화의 강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앞서 처리된 베놈의 결말과 너무 상반된 유치하고 뻔한 결말이기 때문이다.
베놈은 쇠가 울리는 소리에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베놈의 가면을 벗게 된 에디는 베놈의 힘을 그리워하며 다시 뛰어들고는 결말을 맞는다. 이것은 탐욕을 부리면 최후를 맞이한다는 아주 당연한 교훈과 뉘우치면 용서한다는 또다른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가 이런 전래 동화 같은 스토리를 보려고 8000원이나 되는 돈을 지불하려하는가? 적어도 뻔한 스토리를 이용해 관객들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차라리 장르나 이야기를 확실히 한쪽으로 끌고 갔어야 했다. 3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에서 60%는 로맨스인데도 마치 액션영화인 것처럼 과장 광고한 예고편이나 40%의 액션 속에서도 관객을 얕보고 떠들어대는 얕은 스토리 텔링 속에서 관객은 엉덩이에 땀띠가 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일어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