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코쿠 나츠히코의 ‘우부메의 여름’
쿄고쿠 나츠히코는 특징이 있다. 우선 등장하는 인물의 입을 빌려 장황하고도 유식한 설명을 잔뜩늘어놓는다. 이 유식한 설명은 사건에 전혀 관계가 없는 일본의 풍속학적인 정보와 개인적인 철학관을 담고 있으면서도 독특하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설명이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장황한 설명 – 책 분량의 1/5에 달하는,은 교코쿠 나츠히코가 쓰는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서론이자 매력의 출발점이다. ‘우부메의 여름’을 비롯해 ‘망량의 상자’ 등에서도 이런 식의 구조를 보인다. 이 서론은 이에 관심이 없거나 인내심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사건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에 지루함을 안겨줄 수는 있지만 조금의 인내심을 가지고 소설을 읽게 된다면 책 안표지의 일본 풍속도의 의미와 함께 그것이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아시아 문화권들에서 어떻게 변용되고 차용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지루하고도 장황한 설명은 비록 산문의 힘을 빌린 재미없는 부분이라고 인지하게 될지라도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는 그것이 단순히 풍속학으 열거나 지은이 자신의 지식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기막힌 사건의 진술과 우리에겐 낯설지만 뛰어난 상상력을 실로 역사와 사실로서 뒷받침해줄 수 있는 뛰어난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하 스포일러 있음)
‘우부메의 여름’은 일본의 요괴 이야기와 사람들이 가지는 인지 세계와 의식과 무의식을 변용한 프로이트의 정신세계와 함께 약간의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이다. 특히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가상 임신과 인지 세계에 대한 지은이의 설득력이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무한한 공포감을 가져다 줄 수 있기에 기본적으로 뛰어난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가상 임신에 대한 부분이나 인지에 대한 부분이 명쾌하지 못하거나 추리소설에서 언제나 보여지는 증거없는 추리나 탐정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추리력은 독자를 당황케 할 수 있다.
‘우부메의 여름’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부분을 지니고 있는 어느정도 결점을 가진 소설이기에 100% 완벽한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추리 소설이 탐정과 독자를 괴리케 하고 독자 위에 탐정이 존재하여야만 그것을 읽는 독자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상하리만치 놀라운 탐정의 추리력은 그것을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양날의 검과 같은 장치가 되어버린다. 중요한 건 그것을 독자가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추리소설작가는 이 장치를 좀더 교묘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애를 쓴다. 쿄고쿠 나츠히코가 내세운 교고쿠도의 모습은 그런 면에서 합격점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