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ie Ray Vaughan 스티비 레이 본

블루스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에 대한 글입니다.
너무 자세해서 감동먹었어요 ㅠㅠ
저는 레이본 앨범이라곤 84년, 85년 앨범 단 두장 뿐이지만 그래도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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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영국의 블루스 락 무브먼트를 계기로 재조명을 받으며 치솟았던 아메리칸 블루스의 인기는 70년대로 접어들면서도 식을 줄을 모르는 듯 했다. 블루스에 대해 무관심하던 미국의 대중과 뮤지션들은 롤링 스톤즈가 머디 워터스를, 크림의 에릭 클랩튼이 비비 킹을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거명하면서 그동안 외면해 왔던 자국의 음악적 뿌리에 새삼스레 열광했다. 거기에 아메리칸 블루스의 적자이기도한 지미 헨드릭스의 등장은 안그래도 잘 타고 있는 불에 다량의 기름을 쏟아 부었다.동네에서 블루스 잘하기로 유명했지만 여건상 레코딩을 못하고 있던 흑인 로컬 블루스맨들도 하나 둘씩 앨범 데뷔를 하기도 했다. 흑인 블루스맨들에 대한 존경과 동경을 마음에 품은 채, 백인 뮤지션들은 흑인들만의 소유물이었던 블루스를 락 또는 하드 락으로 계승, 발전시켰고, 그런 식의 블루스락은 영미 음악 문화의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블루스 락이나 하드락이 그 나름대로의 위치를 구축하고 자리를 잡게 될 즈음 아버지 격이었던 흑인 블루스는 다시금 차차 잊혀지는 듯했고,70년대 후반 들어 디스코와 펑크가 등장하면서 또다시 블루스의 인기는 땅에 떨어진다.

다시금 상황은 롤링스톤즈의 등장 직전으로 돌아가 블루스 뮤지션들 의 언더그라운드 생활이 시작되었다.영미권의 주류에서 밀려난 그들은 비록 많지는 않지만 열광적인 팬들이 있는 유럽과 일본에서 근근히 활동을 이어나갔다.80년대가 시작되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디스코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새롭게 시도되는 전자음악 및 뉴웨이브가 가세하여 새로운 주류시장을 형성하면서 블루스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갔다.이제 큰 이변이 없는 한, 이후로도 수년간은 블루스가 주목받을 일은 없는 듯 싶었다. 뮤지션들과 팬들은 60년대의 브리티쉬 블루스 락 붐 때처럼 블루스의 위신을 다시 살려줄 그 무언가를 갈구했지만 그게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한편, 당시의 디스코와 뉴웨이브의 열풍은 최근의 얼터너티브 만큼이나 대단했어서 중견뮤지션들도 일시적으로 음악적 방향을 선회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그 중에서도 영국 락의 자존심으로 70년대말부터는 브라이언 이노, 로버트 프립(킹크림슨)등과 함께 다소 전위적 성향의 음악을 추구해오던 데이빗 보위가 82년에 발표한 앨범 Let’s Dance는 충격적인 것이었다.디스코 리듬을 기반으로 한 댄스 음악에 다름 아닌 타이틀곡을 필두로 이 앨범은 보위에 ‘최고 인기가수’의 자리를 주었지만 그의 진지한 음악성에 매료 되었던 기존팬들은 쌍수를 들어 그의 변화에 반대했다. 어쨌든 빌보드 차트 정상에 빛나는 싱글 Let’s Dance는 전세계를 강타했고 사람들은 좋든 싫든 어디서건 그 노래를 들어야 했는데, 그 중 몇사람은 그 곡의 심상치 않은 기타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디스코 리듬과 묘하게 언밸런스 되는 블루스 스타일의 기타 솔로는 일반 세션맨들의 것이라
기엔 너무도 범상치 않았다. 굵은 기타 현에서 분출하듯 뿜어져 나오는 벤딩과 이미 닳을대로 닳은 베테랑인듯한 비브라토는 마치 앨버트 킹을 연상시켰다. 그다지 길지도 않고 그 어떤 화려한 테크닉도 보여주지 않는 이 기타 솔로는 그렇게 화제가 되어 갔고 기타잡지에선 잊혀져 가던 블루스의 혼이 담긴 그 솔로의 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83년, 그가 데뷔 앨범을 냈을 때 그가 바로 ‘재래한 블루스의 메시아’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텍사스 오스틴에서 혜성과 같이 등장한 그의 이름은 바로..

Stevie Ray Vaughan….

1954년생으로 우리 나이 서른에 늦깍이 데뷔를 하여 1990년에 비운의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하기까지 만 7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스티비가 이룬 음악적 업적은 많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어느 누구처럼 음악사에 변혁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고 혁신적인 테크닉이나 주법으로 일렉트릭 기타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 것도 아니었다. 스티비 레이본은 그 어떤 가시적인 성과로 평가되어지는 뮤지션이 아니었다.티 본 워커에서 비비킹과 머디 워터스, 하울링 울프, 그리고 버디가이, 오티스 러쉬, 앨버트 킹, 앨버트 콜린스를 거쳐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자니 윈터 등에 이르기 까지 일렉트릭 블루스 기타의 역사를 집대성한 듯한 수려한 연주와 영혼을 불사르는 보컬,비단 블루스에만 국한되지 않고 장고 라인하트나 웨스 몽고메리의 재지한 분위기와 스윙감에 거친 락적 감각까지 갖춘데다가,무엇보다도 거침없이 쏟아내면서도 헛점을 찾
아보기 힘든 즉흥 애드립 등은 대부분의 기타리스트들이 꿈꾸는 완벽한 기타리스트의 이상형이었고 바로 스티비 레이 본은 그 ‘완벽한 블루스/락 기타리스트의 이상형’자체로서 존재했다.지미 헨드릭스가 사람들이 상상도 못했던 혁명적 뮤지션이었다면 스티비는 사람들이 상상은 해보지만 그렇게 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런 뮤지션이었던 것이다.이런점에 있어서는 역시 살아있는 전설들인 비비 킹, 버디 가이, 존 리 후커, 그리고 에릭 클랩튼 같은 선배 뮤지션들도 입을 모은다. 에릭 클랩튼은 스티비를 가리켜 ‘내가 살아 생전에 본 가장 완벽한 플레이어’ 라고 말한 바 있을 정도로 그는 뛰어났다. 그런 뛰어남으로 인해 그는 대중의 우상에 그치지 않고 뮤지션들이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인정받았으며, 재즈나 헤비 메탈 등 다른 음악을 하는 연주자들도 다시금 한번쯤 블루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그가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에게까지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주된 이유라면 블루스 기타리스트답지 않은 테크닉적인 완성도를 들 수 있다.보통 가시적인 완벽한 테크닉 보다는 감정의 표현과 전달을 주 목적으로 생각해 오던 그때까지의 블루스맨들에 비해 보컬을 병행하면서도 완벽한 리듬과 솔로를 구사하던 스티비의 존재는 특별한 것이었다. 마치 기타가 신체의 일부인 듯 마구 주물러대는 그이지만 그런 와중에 단 한음도 빗나가지 않는,후천적인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할 것만 같은 거침없는 연주는 여타 기타리스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또한 스티비 레이본은 가벼운 디스코/팝/댄스, 혹은 포스트 모더니즘 성향이 지배하던 80년대 초반의 팝계에 등장, 평론가들과 각종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대중의 시선을 끌었고 블루스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라디오에서는 컬처 클럽, 마돈나의 곡과 함께 스티비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콘서트는 매진사례를 기록했으며 앨범은 족족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다.그로 인해 대중은 60년대 이후 또 한번 잊고 있었던 대중음악의 뿌리를 인식하게 되었고,그러한 점에서 백인 블루스를 인정하지 않던 많은 흑인 블루스 뮤지션들도 스티비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스티비는 80년대 블루스 재도약의 메시아 역할을 한 것이다.

Biography………………………………………………

미국 텍사스주의 댈러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스티비 레이 본은 어린 시절을 친형 (역시 미래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인 지미 본 (Jimmie Vaughan) 의 영향아래 보냈다. 음악광이자 기타 키드였던 지미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 나온 블루스나 락큰롤 레코드를 사왔고 어린 스티비는 그런 음악들을 함께 들으며 자랐다.그당시 지미가 사온 것들은 다름 아닌 머디 워터스, 버디 가이, 비비 킹, 티 본 워커, 그리고 앨버트 킹 등의 블루스 레코드 들이었는데 그 외에도 두 형제는 비틀즈 같은 락이나 제임스 브라운을 비롯한 R&B, 케니 버렐과 웨스 몽고메리같은 재즈,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스티비가 최초로 돈을 주고 산 레코드는 락커빌리 스타일의 기타리스트 로니 맥 (Ronnie Mack)이 63년에 발표한 싱글 이었는데, 집에서 큰 볼륨으로 하도 많이 듣는 바람에 아버지가 레코드판을 부숴버리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달려가 그 판을 살정도로 스티비는 그곡을 좋아했다.또 스티비는 존 메이올과 에릭 클랩튼이 함께 한 블루스 브레이커스의 앨범과 제프 벡 재적시설 야드
버즈의 등을 어렸을때 자주 듣던 레코드로 꼽는다. 지미 헨드릭스는 거의 그의 우상이다시피 했는데 나중에 스티비가 죽을때가지 헨드릭스의 음반들은 그의 오디오에서 떠나질 않았다.

형인 지미 덕분에 자연스레 기타까지 배우게 된 스티비는 중학교때 부터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조직, 가끔 클럽연주를 하곤 하다가, 결국엔 음악활동을 위해 열 일곱살때 고등학교를 그만두게 된다.그 후 오스틴 지역에서 The Cobras와 Triple Threat등의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던 그는 1978년 보컬리스트 Lou Ann Barton이 Roomful of Blues(텍사스의 유명한 블루스 밴드)에 가입하기 위해 밴드를 탈퇴하자 남은 두명의 멤버, 베이스의 재키 뉴하우스와 드러머 크리스 레이튼들과 함께 밴드명을 (오티스 러쉬의 곡명을 따서 지은) 더블 트러블로 개명하고 자신이 보컬까지 맡게 된다.계속적인 클럽 라이브 활동으로 텍사스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스티비 본 (앨범 데뷔 전까지는 중간 이름인 Ray를 잘 쓰지 않았다) 과 더블 트러블의 진짜 행운은 82년에 찾아왔다.스티비의 명성을 들은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가 그들을 파티에 초대한 뒤,스톤즈의 대형 전미 투어에서 몇번의 공연에 더블 트러블을 오프닝 게스트로 출연시켜 준 것을 필두로 몽트류 재즈 페스티벌 (Montreux Jazz Festival)에서의 연주에 반한 데이빗 보위와 잭슨 브라운이 도움이 자청하는 등, 스티비와 밴드는 서서히 미국 전역에 그 이름을 알릴 채비를 하게 된 것이다. 이때쯤 베이시
스트 재키 뉴하우스가 탈퇴하고 후임으로 자니 윈터의 밴드에서 활동했던 타미 섀넌이 가입했다. 그리고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가 발표된 직후, 스티비 레이 본은 Epic 레코드에 스카웃 되어 데뷔 앨범 녹음을 시작하게 된다.

1983년 발표한 대망의 데뷔앨범 Texas Flood (데이빗 보위와 함께 협조를 자청했던 잭슨 브라운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언론의 극찬과 함께 스티비 레이 본이라는 이름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알렸다. 이와 함께 기타 플레이어지의 84년 독자 투표에서 ‘일렉트릭 블루스 기타리스트’와 ‘신인 기타리스트’, 그리고 ‘올해의 기타 앨범’ 3개 부문을 휩쓸면서 그는 단숨에 새로운 기타 히어로로 떠오르게 되었다. 다음 해에 발매된 두번째 앨범 Couldn’t Stand the Weather 에서는 더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주며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지만 그간 계속 되어 오던 약물과 알콜 중독 때문에 세번째 앨범 Soul to Soul (1985)을 발표한 이후로는 거의 활동이 불가능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계속 약물과의 힘든 투쟁을 벌이던 스티비는 결국 87년, 베이시스트 타미 섀넌과 함께 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고 계속적인 치료와 함께 심
기일전하여 근 4년만에 내놓은 네번째 앨범 In Step (1989) 은 이제껏 최고의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재기의 신호탄을 올렸다. 깨끗해진 몸으로 다시는 약물을 하지 않을 거라고 공공연히 밝힌 스티비는 당시 페이불러스 썬더버즈(the Fabulous Thunderbirds)를 탈퇴한 형 지미 본과의 듀엣 앨범 녹음 및 제프 벡 (그 역시 오랜만의 스튜디오 앨범 Jeff Beck’s Guitar Shop을 발표했을 때다) 과의 조인트 투어, 조 카커와의 투어 등으로 89년부터 90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90년 여름부터는 스티비 레이 본과 더블 트러블의 독자적인 투어를 시작했는데 스티비의 목숨을 앗아간 비운의 헬기 추락 사건은 그 투어 도중에 일어났다. 8월 26일 이스트 트로이에서의 쇼는 에릭 클랩튼, 버디 가이,지미 본 등이 게스트로 출연해 마지막 앵콜 때 다 함께 잼을 했던 화려한 공연이었다. 이 공연이 끝난 뒤, 다음 공연 장소인 시카고로 가기 위해 스티비는 새벽 12시 30분발 헬리콥터에 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이 본 스티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해 9월, 지미 본과 스티비 레이 본의 듀엣 앨범인 본 브라더스(The Vaughan Brothers)의 Family Style이 발매되었지만 남은 것은 동생을 잃은 지미 본 뿐이었다.

Albums…………………………………………..

(1983)
스티비 레이 본과 그의 밴드 더블 트러블의 데뷔앨범이다.
이 앨범을 발표했을 당시 스티비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서른. 밴드
더블 트러블과 활동한 기간만도 5년이 넘었을 때다.그래서인지 곡이
나 연주에서 풋내기 신인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불가능하다. 이미 이
데뷔 앨범에서부터 스티비의 연주 스타일은 확립되어 있었고 밴드의
호흡 또한 마찬가지다.블루스의 돌풍과 함께 새로운 기타 영웅의 탄
생을 알린 이 앨범에는 스티비가 라이브에서 즐겨 연주하는 곡들이
많은데,아마도 무명시절부터 계속 연주해 오던 곡들이 담겨 있기 때
문일 것이다.

이제는 스티비의 클래식이 된 Pride and joy와 Texas Flood, Lenny
등의 곡과 함께 존경하는 선배들인 버디 가이의 Mary had a Little
Lamb, 하울링 울프의 Tell Me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전통
적인 12마디 블루스곡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연주곡이 세 곡으로
그의 앨범들 중 연주곡이 가장 많다. 그중 매우 빠른 템포의 질풍노
도와도 같은 연주곡 Rude Mood는 그래미 최우수 락연주 부문에 노미
네이트 되기도 했다.

스티비의 친구이자 연주자이기도 한 도일 브램홀은 이 앨범의 Dirty
Pool에서부터 공동 작곡자로 참여하고 있고 크리스 레이튼과 타미
섀넌의 리듬섹션도 원숙함을 보여주는 가운데 스티비의 기타 연주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앨범에 관한 가장 놀라운 것은 앨범 전체의 녹음에 단지 두 시간
정도만이 소요되었다는 것이다. 레코딩 엔지니어 리차드 뮬렌 (최근
에릭 존슨의 엔지니어로 활동)에 의하면 이 앨범은 스튜디오 라이브
로 녹음되었으며 처음 한시간 동안 내리 열 두어곡을 연주한 뒤 쉬
었다가 다시 들어가 같은 곡들을 한번씩 더 연주한게 전부였다고 한
다. 그 중에 열곡을 추리고 두번의 연주중 잘된것을 골라 믹싱한 것
이 바로 이 앨범이다.그리고 사실 그 레코딩은 앨범을 만들기 전 데
모 형식의 작업이었으나 모두들 그 이상 작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
다.

(1984)
성공적인 데뷔에 이어 이듬 해에 내놓은 두번째 앨범으로 전작에 이
어 역시 리차드 뮬렌과 밴드의 공동 프로듀스다.전작의 성공과 음악
적으로 좀 더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는데 힘입어 높은 판매고
를 기록하기도 했다.

스티비 레이 본의 테크니컬한 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짧은 연주곡 Sc
uttle Buttin’ 을 필두로 모던한 락 넘버인 타이틀 트랙,티 본 워커
와 함께 도발적인 스테이지 매너로 유명했던 전설적인 블루스맨 기
타 슬림(Guitar Slim)의 The Things (That) I Used to Do 로 이어지
는 앨범의 중반부에는 다름아닌 지미 헨드릭스의 클래식 Voodoo Chi
le(Slight Return) 의 리메이크가 들어있다. 이 곡에서 스티비는 거
의 헨드릭스에 못지않은 열정적인 연주를 좀더 블루스적인 느낌으로
들려준다. 그와 함께 앨범의 또하나의 백미는 지미 리드의 Tim Pan
Alley로 장장 9분에 이르는 이 곡에서는 굉장히 섬세 하면서도 감정
이 잔뜩 들어간, 긴장감 있는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스윙 재즈 풍의
연주곡인 Stang’s Swang도 이채로운 곡인데 여기에는 페이불러스 썬
더버즈의 드러머 프랜 크리스티나가 게스트로 참여했다.전작이 걸작
인 스티비 레이 본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In Step과 함께 걸작으
로 꼽히는 앨범이다.

1984년에 Atlantic 레코드에서 나온 블루스 컴플레이션 앨범 Explosion>에 수록된 Texas Flood의 라이브 버전인 Flood Down in T
exas로 스티비는 그래미 최우수 트래디셔널 블루스 레코드상을 받기
도 했다.

(1985)
또다시 다음해에 발표한 세번째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키보드
플레이어의 영입이다. 더블 트러블에 새로이 가입한 건반 주자 리즈
와이넌스는 밴드 사운드의 폭을 넓히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블루지
한 감각과 리듬감이 넘쳐 흐르는 연주곡 Say What! 에서부터 리즈의
해먼드 오르간은 단순한 존재감을 넘어선 활약을 보여준다. 이 곡에
서의 스티비의 감각적인 와와 페달 연주 역시 일품이다.

스티비의 앨범에는 항상 한두 곡씩 슬로우 블루스 넘버가 들어있는
데 이 앨범에는 그의 오리지널 곡인 Ain’t Gone ‘N’ Give up on Lov
e가 들어 있다. 이 곡은 드물게 메이플 넥의 스트래토로 연주된 듯
한 톤을 들려주고 있다 (다른 곡들과 비교해 들어보면 메이플 지판
과 로즈우드 지판의 톤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Gone Home은
웨스 몸고메리와 케니 버렐 등에게서 받은 영향을 증명하고 있는 연
주곡이다. 그는 철저히 몸으로 느끼며 연주를 하기 때문에 이런 재
즈 스타일의 연주는 그럴만한 반주가 없으면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스타일을 특별히 연습하는건 아니지만 음악을 들어면서
그러한 감각을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이 앨범에도 역시 헨드릭스를
추모하는 의미로 버전업 시킨 Come On (Part II) 이 수록되어 있다
(헨드릭스의 버전 역시 리메이크로 Come On (Part II)라는 제목이었
다). 이 앨범은 전작들에 비하면 상당히 전통적인 블루스에 근접해
있는 느낌인데 아마도 새로운 키보드 플레이어의 영입과도 무관하지
는 않을 것이다.앨범 전체를 통해 흐르는 리즈와이넌스의 해몬드 오
르간과 홍키 통크 피아노는 흥겹기 그지 없다.

(1989)
세번째 앨범 발표 후 85~86년에 걸쳐 가진 투어 중, 세번의 공연 실
황을 편집한 라이브 앨범이다. 열정적인 연주와 카리스마적 흡인력
으로 유명했던 밴드의 생생한 연주 실황을 두장의 LP (CD는 한장)에
담았다. 총 13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1집의 4곡, 2집의 2곡, 3집의 4
곡 외에 I’m Leaving You (Commit a Crime), Willie the Wimp, 그리
고 스티비 원더 (두 스티비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의 Super
stition등, 라이브용 레퍼터리 3곡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수록된
Say What! 으로 스티비는 두번째 그래미를 거머쥐기도 했다 (최우수
락연주 부문). 1986년 7월 17일 텍사스 오스틴의 오페라 하우스 실
황에는 지미 본이 스페셜 게스트로 참가, Look at the Sister에서는
스티비와 함께 기타 솔로도 들려 준다.

앨범이 발표된 86년에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에게 헌정한 이 앨범 발
표 이후, 스티비는 데뷔 이래로 계속 되어온 알콜과 마약 문제로 슬
럼프에 빠지게 된다.

다음앨범인 In Step 으로 이어집니다….

(1989)
마약과 알콜 중독 치료를 위해 재활 클리닉에 까지 들어 갔던 스티
비가 새로운 각오로 준비한 역작이다.매년 앨범을 발표하던 그에게
있어서 이전 3년간은 재충전의 기회였다.그래서인지 발표되자 마자
뜨거운 반응을 얻어낸 이 앨범은 이전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
고 있다. 먼저 히트곡인 Crossfire나 Tightrope, Wall of Denial에
서 보이듯이 전체적으로 전통적인 12마디의 블루스 보다는 모던한
분위기의 컨템퍼러리 락의 비중이 늘어난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러
한 음악적 변화에는 스티비의 작곡 파트너인 도일 브램홀의 역할도
컸다. 그리고 밴드의 사운드나 기타의 톤 또한 그간의 끈적 끈적한
사운드에서 탈피, 좀더 드라이하면서도 깔끔한 소리를 들려준다.특
히 스티비는 이 앨범의 기타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
다고 하는데 확실히 전과는 달리 마샬앰프 특유의 톤이 부분적으로
전면에 나서고 있는 점이라든가 전체적으로 앰프의 리버브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드라이한 톤을 추구하는 점 등의 변화가 눈에 띈다
(이러한 톤의 경향은 후에 나오는 본 브라더스의 앨범까지 이어지
고 있다).이러한 변화는 좀더 짜임새 있는 앨범을 만들어보자는 의
도의 프로덕션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디지틀로 녹음된 이 앨범에서
스티비 레이 본은 팔자에 없는 줄 알았던 기타 더빙도 했다.

물론 이 앨범에도 역시 버디 가이의 Leave My Girl Alone이라든가
윌리 딕슨의 Let Me Love You 같은 트래디셔널 블루스도 수록하고
있는데 하울링 울프의 Love Me Darlin’ 같은 곡에선 하울링 울프의
기타리스트였던,그리고 스티비가 존경하는 기타리스트 중의 하나인
허버트 섬린 (Hubert Sumlin) 의 흉내내고 있기도 하다 (각 프레이
즈가 끝날 때마다 슬라이드를 해 주는 이 주법을 스티비는 매우 좋
아하여 아예 이 주법을 거론할 때는 hubert라는 동사로 표현한다).

첫 앨범의 Lenny를 생각나게 하는 앨범의 마지막 곡 Rivera Paradi
se는 다시금 서정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스티비는 89년 기타
플레이어 독자 투표에서 5번째 수상을 하며 기타 플레이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랐고 앨범 In Step은 이듬해 그래미에서 최우수
트래디셔널 블루스 레코드 상을 수상했다.

THE VAUGHAN BROTHERS (1990)
스티비가 죽은지 한달도 채 지나지 않은 90년 9월에 발매된 형 지
미 본과의 듀엣 앨범이다. 당시 페뷸러스 썬더버즈를 탈퇴한 지미
본과 90년 봄에 녹음한 이 앨범은 본 형제의 첫 조인트 작품이어서
발매되기 전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Family Style
은 두 형제가 함께한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이 앨범 역시
블루스 뿐만 아니라 모타운적인 흑인음악과 펑크, 가스펠, 락 등에
도 관심이 많은 지미본과 프로듀서 나일 로저스의 영향으로 모던한
경향을 많이 띄고 있다.거기에 스티비의 전통적인 블루스가 가미되
어 어느 앨범 보다도 재미있고 들을거리 많은 앨범이 되었다.

보컬과 기타 솔로 등은 곡마다 형제가 사이좋게 번갈아 가면서 하
고 있지만, 기타 솔로는 거의 스티비의 몫이다. 두 형제의 주고 받
는 프레이즈가 흐뭇한 연주곡 D/FW와 지미 본 스타일의 정의를 내
려주는 Hillbillies from Outerspace, 역시 지미 본의 소울/가스펠
발라드로 인기를 끌었던 Tick Tock,스티비의 휘몰아치는 기타와 와
와 연주를 들을 수 있는 Long Way From Home, Telephone Song 등,
다양하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곡들로 가득 차 있다. 지미 본의 동
료였던 페이블러스 썬더버즈의 베이시스트 프레스톤 허바드와 스티
비의 곡 작업 파트너로서만 이름을 비췄던 도일 브램홀 (그는 몇곡
에서 드럼을 맡고 있다) 이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한 이 앨범은 단
지 스티비의 유작으로서 보다는 앨범 자체의 우수함으로 평가를 받
아야 할 것이다. 다음 해 그래미에서 이 앨범은 최우수 컨템퍼러리
블루스 레코드 부문을, 연주곡 D/FW는 최우수 락 연주 부문을 수상
했다.

(1991)
스티비의 사망 1주기를 기념하는 뜻에서 그의 미발표곡들을 모아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 그동안 네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면서
수록되지 못한 곡들 중에서 지미 본이 선곡을 하고 더블 트러블의
멤버들이 도왔다. 수록된 열곡 중 2집과 3집 세션때의 것들이 각각
4곡 씩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일종의 B-Side를 모은 앨범이
긴 하지만 그 완성도로 볼 때 정규 앨범과의 큰 차이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이듬해에 이 나오기 전
까지만 해도 스티비의 슬라이드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곡이었던 Boot Hill, 어렸을 때 그토록 좋아했다던 로니 맥의 Wham,
재즈 가타리스트 케니 버렐의 라틴 풍 연주곡 Chitlins Con Carne,
하울링 울프의 May I Have a Talk with You (4집의 Love Me Darlin’
과 제목만 다른 같은 곡) 와 시카고 블루스의 대부 머디 워터스의
Close to You 같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엘모어 제임
스의 The Sky is Crying 과 지미 헨드릭스의 Little Wing은 스티비
가 죽은 후에 나온 이 앨범 덕분에 그의 대표곡 대열에 끼게 되었
다(특히 The Sky is Crying 에서 들려주는 앨버트 킹 식의 길게 늘
어지는 프레이즈는 Texas Flood와 쌍벽을 이룬다).어쿠스틱 기타의
소박한 반주로 인생을 노래한 마지막 곡 Life by the Drop은 다시
한번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던 고인의 생각나게 한다. 이 앨범이 발
표된 91년에 텍사스 주정부는 스티비의 생일인 10월 3일을 ‘스티비
레이 본의 날’로 지정했다.

(1992)
스티비 레이 본과 더블 트러블이 아직 데뷔 앨범을 내기 전, 그리
고 베이시스트 타미 섀넌도 아직 가입하기 이전 (베이스는 재키 뉴
하우스가 맡고 있다), 거기다 스티비가 그의 중간 이름인 ‘레이’를
붙이지 않았던 시절인 1980년 4월 1일의 라이브 실황 앨범이다.

당시 지미 본이 이끄는 페이블러스 썬더버즈는 이미 레코드 회사와
계약을 하고 있었지만 스티비는 아직 무명이던 시절이다.하지만 로
컬 밴드로서 텍사스에서의 인기는 누구못지 않았던 관계로 텍사스
오스틴의 KLBJ FM라디오는 그들의 라이브를 방송으로 내보냈는데
그 때의 녹음을 편집한 것이 이 앨범이다.트리플 쓰릿에서 더블 트
러블로 바뀐지, 즉 스티비가 보컬을 맡은지 2년밖에 안되는 때이고
데뷔 앨범이 나오기 3년전이라고 해서 뭔가 어설픈,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기대했다가는 또다시 배신당한 기분이 들것이다.

첫곡 In the Open 에서부터 그 특유의 휘몰아치는 기타를 접하게
되면 그런 일말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면서 다시금 그의 천부적 재
질을 통감하게 된다.후의 정규 앨범에서 접할 수 있는 Tin Pan All
ey, Love Struck Baby, Tell Me, 그리고 데뷔 앨범의 I’m Cryn’과
같은 곡인 Live Another Day 외에 그가 당시 라이브에서 즐겨 연주
하던 여섯곡을 새롭게 들을 수 있다. 기타 슬림의 They Call Me Gu
itar hurricane, 오티스 러쉬의 All Your Love I Miss Loving 등이
신선하게 다가오고 하울링 울프의 Shake for Me에서는 허버트 섬린
의 솔로를 거의 그대로 카피하기도 한다.결국 이 앨범에서 찾을 수
있는 데뷔이전의 뭔가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라면 짧은 머리에 베
레모를 쓰고 ‘스티비 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그의 외모 밖에
없을 것이다.

(1995)
95년 새삼스럽게 발표된 스티비 레이 본의 베스트 앨범으로 지금까
지 나왔던 앨범들 중에서 추린 열 곡과 함께 한곡의 미발표곡 등,
총 11곡이 수록되어 있다.

Texman
그의 미발표곡중 하나로 비틀즈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원곡
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의 스티비 특유의 텍사스 블루스로 재해석
하고 있다. 파워풀한 기타 솔로가 압권이다.

Texas Flood
데뷔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스티비 레이본 블루스’의 대표격인 곡
이다. 앨버트 킹에게서 영향받은 늘어지는 듯한 연주는 이제 스티
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The House is Rockin’
4집 In Step의 첫곡이자 신나는 락큰롤 곡. 리즈 와이넌스의 홍키
통크 피아노와 함께 짧지만 재치있는 락큰롤 감각의 솔로가 매력적
인 곡이다.

Pride and Joy
첫 앨범의 히트곡 가운데 하나로 이 역시 대표적인 ‘스티비 레이본
스타일’의 연주를 담고 있다.힘찬 셔플 리듬의 스트로크를 기본 바
탕으로 리듬과 솔로가 빈 틈 없이 곡 전반에 걸쳐 자연스럽게 이어
진다. 노래를 하면서도 정교한 리듬과 애드립을 구사하는 것 또한
스티비의 특징인데 보컬 중간 중간의 애드립은 개방현을 이용한 프
레이즈 들로서 벤딩 보다는 슬라이드 주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Tightrope
다시 4집의 수록곡으로 블루스보다는 일반적인 락의 성향이 강한
곡이다. 마샬 앰프 느낌의 톤으로 연주되는 리듬 커팅 주법을 중심
으로 전개되면서 상당히 모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타미 섀넌
의 베이스도 이전의 그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던 타이트한 연주를 들
려준다. 드라이브가 걸린 솔로에서는 마이너와 메이저 펜타토닉을
절묘하게 배합하고 있다.

Little Wing
편집 앨범인 The Sky is Crying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원래는 두번
째 앨범 레코딩 때 녹음되었다. 1집의 Lenny나 4집의 Rivera Parad
ise와 맥을 같이 하는 서정적인 연주 곡인데 능숙한 코드웍과 애드
립이 배합된 지극히도 헨드릭스적인 연주를 더욱 블루지하게 소화
해 내고 있다. 스티비가 애용하는 굵은 게이지의 현의 매력은 이런
스타일의 곡에서 더더욱 드러난다.테마 중간 중간에서는 역시 매력
적인 펜더 기타 특유의 아밍도 들을 수 있다.

Crossfire
다시 4집의 락 넘버로 라디오 히트를 기록했던 깔끔한 느낌의 곡이
다. 감각적인 해몬드 오르간과 혼섹션이 첨가된 가운데 스티비로서
는 드물게 리듬기타 없이 애드립만 넣어주고 있다. 솔로 역시 그로
서는 드문 짜여진 듯한 구성으로 확실히 네번째 앨범의 타이트한
프로듀스를 실감할 수 있다.타이트한 솔로 끝에 후반부의 질풍노도
와도 같은 커팅 연주가 이어진다.

Change It
왠지 텍사스적인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드는 세번째 앨범 Soul to So
ul의 곡으로 스티비로서는 드문 마이너 느낌의 곡이다. 당시 새로
가입한 리즈 와이넌스의 오르간 연주가 애수를 더해주며 크리스 레
이튼의 드럼 또한 곡의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고 있다. 마이너 느낌
의 곡이라고는 했지만 솔로는 역시 펜타토닉 만으로 연주되고 있다

Cold Shot
레슬리 스피커를 사용해 코러스가 걸린 느낌을 두번째 앨범의 수록
곡이다.이 곡도 두번째 앨범 타이틀곡과 마찬가지로 해밀턴의 커스
텀 기타로 녹음되었다고 한다.소울풀한 보컬과 함께 솔로 도입부의
감각적인 연주가 일품이다.

Could’nt Stand the Weather
2집의 타이틀 곡으로 역시 스티비의 대표적인 곡 중 하나다. 이 곡
의 코러스가 걸린 듯한 배킹 기타는 모두 지미 본이 연주한 것인데
(곡 초반부의 아르페지오와 단음 리프, 그리고 곡 전편에 걸친 리
듬기타) 그래서인지 곡의 분위기 마저도 지미 본의 느낌이 강하다
스티비는 여기서 기타 솔로와 정교한 커팅의 메인 테마 프레이즈만
을 연주하고 있다. 역시 12마디를 벗어난 코드 진행이 있는 탓인지
솔로는 멋지게 만들어진 느낌인데 솔로 중반의 픽업 체인지로 인한
톤의 변화는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Life without You
헨드릭스적인 코드웍을 중심으로 한 서정적인 발라드로 3집의 마지
막 곡이기도 하다.건반의 도입으로 더더욱 서정적인 느낌이 배가되
었다. 기타 솔로는 전혀 스티비 레이본 답지 않은 굉장히 지저분한
느낌의 퍼즈 톤으로 연주되고 있는데 그 역시 헨드릭스 적인 맛을
내주고 있다.

Sessions………………………………….
스티비 레이 본이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에서 연주를 한 적은 그리
많지 않은데 그 중대표적인 것이라면 물론 데이빗 보위의 Let’s Da
nce 를 들 수 있다. 크게 히트했던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을 들어 보
면 그 솔로가 스티비의 것임을 알아 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또다른 히트곡인 China Girl 에서도 그의 멋진 솔로를 들을 수있다
그리고 영화 Rocky IV 에도 삽입되었던 제임스 브라운의 Living in
America (제임스 브라운의 86년도 앨범인 Gravity 에 수록되어 있
다) 의 솔로도 스티비의 것이다. Come Let Me Make Your Love Come
Down 이라는 곡의 기타 솔로는 스티비와 비비 킹이 함께 연주하고
있다.또한 스티비는 86년에 나온 Back to the Beach라는 영화의 사
운드 트랙에 실렸던 Pipeline-벤처스의 곡으로 유명-에서의 연주로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된 적이 있는데,이 곡에서 협연한 사람은 ‘서
프기타의 황제’ 딕 데일(Dick Dale, 영화 펄프 픽션의 삽입곡 Misi
rlou를 기억하시는지) 이다. 그 외에도 스티비는 어린 서절의 우상
이었던 로니 맥, 밥 딜런 등의 80년대 앨범 들에 참여한 바 있다
그와 친분이 있는 여러 뮤지션들이 참여한 공연 실황 비디오인 B.B.
King and friends 에서도 스티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Guitars & Sounds…………………………………
스티비 레이 본의 기타 사운드는 기본적으로 맑고 섬세한 톤으로 경
우에 따라 페달을 이용한 드라이브 톤을 사용한다. 스트래토 캐스터
와 팬더 앰프를 이용한 맑고 섬세한 톤이라고는 했지만 굉장히 거칠
고 투박한 듯한 뉘앙스 또한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굉장히 굵은
현의 게이지와 강한 피킹 때문일 것이다.

스티비의 메인 기타는 ‘넘버 원’이라는 애칭의 59년제 팬더 스트래
토캐스터로 대부분의 곡들이 이 기타로 연주되었다. 그가 죽은 후인
92년에 펜더에서 내놓은 시그니추어 모델도 이 ‘넘버 원’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 진 것이다. 굉장히 낡은 바디에 검은 피크가드, 그리고
피크가드 위에 스티비가 직접 붙여 놓은 ‘SRV’ 의 이니셜, 로즈우드
지판 (로즈우드 지판을 좋아하는 스티비는 넥을 62년형으로 갈았다)
을 가진 이 기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다. 스티비는 깁슨
기타에 달려있는 스타일의 점보형 프렛이나 던롭의 베이스용 프렛등
을 선호했는데, 그 역시 계속 닳아서 갈아대는 바람에 No.1에 원래
달려 있던 오리지널 넥은 못쓰게 되었다고 한다.넥은 나중에 구입한
버터스카치 피니쉬된 스트래토의 것으로 교체했다.특이한 것은 트레
몰로 브릿지로, 왼손잡이면서도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그대로 뒤집어
연주하는 오티스 러쉬나 지미 헨드릭스를 동경했던 스티비는 자신의
기타에도 왼손잡이용 트레몰로 브릿지를 달았다.트레몰로 암이 위쪽
에 달려 있어 처음에는 소매가 걸려 찢어지기도 하는 등 불편한 점
도 많았으나 나중에는 익숙해졌다고 한다. 스티비는 굉장히 굵은 현
을 선호하는데 그 특유의 강하면서도 두꺼운 톤은 굵은 줄에서 나온
대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보통 사용한다고 알려진 게이지
는 1번줄부터 .001~.013, .015~.017, .019~.022 (와운드되어 있지
않은, 보통 3번줄과 같은 일반 현), .028, .038, .058 의 세팅으
로 1~3번줄은 스티비의 컨디션에 따라 약간씩 변동이 있다. 예를 들
어 1번줄의 경우, 계속되는 공연으로 피로할 때에는 .012나 . 011을
사용한다.그리고 굵은 현의 장력을 견디기 위해 브릿지 아래에 다섯
개의 스프링을 모두 장착했다.이러한 굵은 게이지의 세팅은 보통 벤
딩이나 비브라토가 거의없는 스탠다드 재즈 뮤지션들이나 여타 블루
스 기타리스트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매우 강한 손힘을 가
진 스티비는 거의 .009나 .010 정도를 다루듯 자유자재로 연주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거의 중독된 듯이 더욱 굵은 줄을 찾아다니곤 했었죠.
줄이 굵으면 굵을수록 그 소리가 좋았으니까요. 사용해본 가장 굵
은 1번줄이 .017 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 미친짓이었
어요.”

스티비의 영향을 받은 신진 기타리스트들도 역시 굵은 현을 사용하
여 그와 같은 느낌을 내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호에 소개했던
크리스 듀어트 같은 경우 .011, 케니 웨인 셰퍼드는 .012의 세트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