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지 않나요

고려대역 2번 출구를 나섰다.

가끔씩 밤늦은 길을 돌아오면
도로에선 차들이 전조등을 켜둔채 눈부시게 달리고 있다.

가끔씩 전조등은 마치 태양보다도 더 밝아서
잠시동안 내 눈을 새하얗게, 머릿속을 모두 새하얗게 채워버린다.

가끔씩 도로변의 포장마차보다 더 큰 육중한 포장마차가 지날때마다
울리는 덜커덩 소리와 클락션 소리는 움직이지 못하는 포장마차를 놀라게 한다.

가끔씩 소중한 전화를 기다리듯 즐거운 또각또각 소리가 들리면 소리의 근원을 향한다.

가끔씩 물고기를 낚으려는 낚시꾼의 눈빛처럼
강렬한 서치라이트 속에서 기억 속에 나타난 후광의 소녀를 본다.

가끔씩 문 앞에 서서 열쇠를 넣기 전에 이런 생각이 든다.

‘지루하지 않나요.
조금 지루해져서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하려면 재미있는 것은 있는데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